아름다운 청풍호반을 끼고 있는 청풍문화재단지를 가다. (2013년 8월 31일)
청풍은 자연경관이 수려하고 문물이 번성했던 곳으로 많은 문화 유적을 갖고 있었으나 충주댐 건설로 청풍면 후산리, 황석리, 수산면 지곡리에 있던 마을이 문화재와 함께 수몰될 위기에 있었다. 4대강유역 종합개발계획으로 충주다목적댐 공사가 1978년 6월부터 시작하여 1985년 10월 준공되어, 수몰지역내 문화유산을 1983년 부터 3년여에 걸쳐 1만 6천 평 부지 위에 원형대로 이전 복원하였다.
1985년 12월 23일 개장하여, 지금은 8만 5천 평의 규모로 확대 개발되었다. 보물 2점(한벽루, 석조여래입상), 지방유형문화재 9점(팔영루, 금남루, 금병헌, 응청각, 청풍향교, 고가4동), 지석묘, 문인석, 비석 등 42점과 생활유물 2천여 점이 보관되어, 옛 남한강 상류의 화려했던 문화의 산실로 자리 잡고 있다. 특히 청풍호반 중앙, 수경분수에서 쏘아 올리는 시원한 물줄기는 보는 이로 하여금 탄성을 자아내게 하고, 번지 점프장과 수상레저시설이 갖추어져 있다
팔영루
청풍 후산리 고가
제천 물태리 석조여래입상(보물 546호)
청풍면 읍리 대광사 입구에 있던 이 불상은 충주댐 건설로 인한 수몰로 현재 위치로 이전하였으며, 전체적인 조각양식을 볼 때 10세기 무렵의 작품으로 보인다. 이 석불입상은 당당한 어깨, 양감있는 표현 등에서 통일신라 불상의 힘을 느끼게 하고 있지만, 목의 형식화된 주름이라든지 비사실적인 손의 표현과 괴체화된 신체 등을 볼 때는 고려시대의 양식을 지닌다.
가늘면서도 두툼한 눈, 넓적한 코, 뚜렷한 인중은 자비로운 부처의 풍모를 잘 나타내고 있다. 두 귀는 양 어깨까지 길게 드리워져 있고 목에는 3개의 주름이 형식적으로 표현되어 있다. 옷은 양 어깨를 감싸고 있는데 옷주름이 두껍게 처리되어 신체의 윤곽이 거의 드러나지 않고 있다. 허리에는 치마를 묶은 띠매듭이 표현되어 있으며, 그 아래로는 U자형의 주름이 비교적 자연스럽게 흘러 내리고 있다.
금남루(충청북도 유형문화재 제20호
이곳은 청풍부의 아문으로 '도호부절제아문'이란 현판이 걸려있다. 순조25년(1825)에 청풍부사 조길원이 처음 세우고 현판도 걸었다. 본래 청풍면 읍리 203-1번지에 있었으나, 충주댐 조성으로 인하여 1983년에 지금의 자리로 옮겨 복원하였다.
금병헌(충청북도 유형문화재 제 34호)
이곳은 청풍부의 청사로 쓰였던 동헌건물이다. 본래 청풍면 읍리 203-1번지에 있었으나, 충주댐의 건설로 인하여 1983년에 지금의 자리로 옮겨 복원하였다. 정면 6칸, 측면3칸의 팔작집이다. 일명 명월정이라고도 하며, 내부에는 '청풍관'이란 현판이 걸려있다.
한벽루 (보물 제 528호)
고려 충숙왕4년 (1317)에 청풍현이군으로 승격되자 이를 기념하기 위해 세운 관아의 부속건물로, 1972년 대홍수로 무너진 것을 1975년 원래의 양식대로 복원하였다. 이 루는 석축토단의 자연석 주초석 위에 기둥이 배가 부른 엔타시스 수법을 쓴 층 아래기둥을 세우고 마루를 설치하였다.
응청각 이 건물의 용도는 알 수 없고, 한벽루의 좌측에 나란히 세워져 있었다.
처음 세운 시기는 알 수 없으나, 명종 초 이황 (1501~1570)이 단양군수로 있을 때 '응청각'이라 이름 하였다고 한다. 본래 청풍면 읍리 203-1번지에 있었으나 충주댐의 건설로 1983년 이 자리로 옮겨 복원하였다.
청풍호반과 수상레저시설, 그리고 그 뒤로 보이는 청풍리조트
청풍대교
관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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