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 우리 강산/충청도

충남 태안군 천리포 수목원에 가다.

blue violet 2015. 8. 21. 08:04

천리포수목원에 가다. (2015년 8월 15일)

 

낯선 길을 걷다가, 또는 깊은 산속에 핀 야생화를 보면 정말 사랑스럽다. 야생화가 예쁘다고 느껴지는 것은 나이가 들어감이라는데, 그렇더라도 수줍게 피어있는 야생화를 보면 정말 예쁘다. 그리고 문득 푸른 눈의 한국인 민병갈(밀러-1979년 귀화)씨가 생각난다. 내가 처음 천리포수목원에 갔던 것은 1977년, 지금으로부터 38년 전이다. 그 당시 학교 친구들과 함께 겨울바다를 보러 천리포로 향했는데, 우리는 그곳에서 평생 잊지 못할 사람을 만났다. 수목원 설립자인 밀러씨(그 당시 우리는 그를 이렇게 불렀다.)를 만나, 일반인에게는 개방하지 않던 비밀의 정원을 관람할 수 있었다. 20세 초반, 까르륵 거리며 몰려다니는 우리에게 그 분은 진지하게 야생화에 대해 설명하며 수목원을 안내해주셨다. 외국인이 낯설기만 했던 그 시절, 푸른 눈을 가진 서양인이 우리에게 먼저 다가와, 애정 어린 눈빛으로 야생화에 대해 말씀하시던 그 기억이 생생하다. 그 분은 우리나라 최초 민간 수목원을 설립하여 오직 수목을 가꾸며 아름다운 강산을 세계에 알린 분이다. 그래서 이번에 천 송이의 수련전을 여는 시기에 맞추어 가족들과 함께 천리포 수목원을 찾았다.

 

 








































 











 

2015년 7월 20일~8월 30일까지 천리포 수목원에서 천년의 전설이 서린 천 송이의 수련을 볼 수 있다. 수련은 1억년 이상의 역사를 가진 식물로, 현재 지구상에서 사라진 동물인 공룡보다도 훨씬 오래전부터 지구상에서 살아왔다고 한다. 그래서 수련은 살아있는 화석이자 살아있는 전설이라고도 한다. 지금 천리포에서는 수천개체의 수련이 매일 꽃을 피우는데, 우리는 그 아름다운 수련을 만나러 새벽 같이 일어나 수목원으로 갔다. 아담한 연못엔 수련들이 수줍게 피어 우리를 맞았다.

 















 

보랏빛 수국이 흐드러지게 피던 몇 년 전 여름, 엄마 아버지를 모시고 가족들과 함께 천리포수목원을 방문했었다. 국내 최대 식물종 보유 수목원으로, 천리포수목원은 2000년 국제수목학회로부터 아시아에서는 최초(세계 12번째)로 ‘세계의 아름다운 수목원’으로 인증 받았다고 한다. 식물을 연구하고 보전하던 밀러씨는 2002년 4월 8일에 영면하셨지만, 그가 한국을 얼마나 사랑했는지는 수목원을 둘러보면 느낄 수 있다. 천리포수목원은 설립 이후 40년간 연구목적 이외에는 출입할 수 없는 비 개방 수목원이었다. 지금은 7개의 관리 지역 중, 정원인 밀러가든을 2009년 3월 1일부터 개방하고 있다

 



















 

밀러씨는 미국인 정보장교로 1945년 한국 땅을 밟았고, 한국에서 근무가 끝난 다음 미국으로 돌아갔다. 하지만 잠시 머물렀던 한국을 잊지 못하여 다시 돌아와 한국은행에서 근무하게 되었다. 1962년 그가 은행원으로 승승장구할 때, 지금의 천리포 수목원 터가 된 토지 2천 평을 사달라는 부탁을 받았다고 한다. 그래서 그 당시 땅을 매입하였고 그곳이 지금의 천리포 수목원 터가 된 것이다.

그 땅에 무엇을 할까 고민을 하던 밀러씨는 식물을 심기 시작했고, 1970년 수목원 조성을 시작해서 1979년 재단법인 인가를 받았다. 내가 처음 수목원을 방문했을 때에는 수목원을 조성하던 초기였던 것 같다. 해풍에 살아남지 못하는 수목이 많아 힘든 시기를 보내기도 했지만, 끊임없는 연구로 바닷가에 자리하고 있는 자연환경에 맞추어 그에 맞는 식물을 가꾸기 시작했고, 점차 몸집이 커진 수목원의 재정이 어려워지자, 결국 은행을 그만두고 모든 사재를 털어 수목원에 정성을 기울였다고 한다. 그런 정성 덕분에 지금 우리들이 아름다운 밀러의 정원을 볼 수 있는 것이다.










 

 
















 










 

 

 

바로 앞에 보이는 섬닭섬(낭새섬)은 자연적인 방파제 역할을 하고 있는데 육지에 붙어있는 산을 뭍닭섬이라 하고 바다에 위치한 섬을 섬닭섬이라 부르고 있다. 그중 닭섬은 썰물시 육지와 연결되는 곳이다. 주민들은 이 섬이 닭의 벼슬처럼 생겼다고 ‘닭섬’이라고 부르지만, 밀러씨는 ‘낭새섬’이라고 불렀다고 한다. 낭떠러지에 집을 짓고 살아가는 ‘낭새’가 이 섬으로 돌아오길 간절히 바라는 마음으로 낭새섬이라 불렀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