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암절벽 사이로 고운 단풍이 물들어 가는 곳,주왕산에 가다. (2014년 10월 25일)
20년 전쯤 다녀온 주왕산에 다시 가고 싶다는 생각을 자주 했었는데 워낙 서울에서 거리가 멀어 맘먹고 갈 수 없었다. 그런데 고향 친구들과 함께 주왕산 등산을 하게 되었다. 새벽 6시 40분 청량리에서 출발하는 안동행 기차에 몸을 싣고 마음이 여유로워 졌다. 안동에서 내려 고향에서 온 친구들과 함께 만나 점심식사를 하고, 주왕산으로 출발했다.
1976년 국립공원으로 지정된 청송 주왕산(721m), 주왕계곡 일원이 2003년 10월 명승 제11호로 지정되었다. 태백산맥 남단에 위치한 주왕산은 가을이면 단풍이 곱기로 유명한 곳이다. 게다가 웅장한 산세와 기암절벽, 그리고 바위를 휘돌아 떨어지는 폭포가 장관이다. 특히 대전사에서 제3폭포까지 4Km에 이르는 계곡은 주왕산의 아름다움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는 곳이다.
우리는 오후 1시쯤 산행을 시작한 터라, 상의매표소를 산행 들머리로 하여 대전사를 거쳐 주왕암, 그리고 제1. 2. 3폭포까지만 다녀오기로 했다. 일주문을 들어서자 뒤편으로 매끈한 기암단애가 대전사를 에워싸고 있다. 주왕산의 기암절벽은 화산재가 용암처럼 흘러내려가다가 멈춰서 굳은 회류응회암으로, 다른 산의 화강암 바위와는 사뭇 다르게 매우 매끄럽다.
우리는 대전사를 지나 주왕암, 주왕굴까지 올라갔다. 주왕굴에서 내려와 주방천을 따라 학소대에 이르렀다. 시루봉이 병풍처럼 에워싸고 있는 입석대를 지나자 제1폭포가 나타났다. 폭포를 감싸고 돌아나간 거대한 바위들이 예술이다. 비밀의 문처럼 우뚝 버티고 서 있는 바위 사이를 통과하면, 선녀탕과 구룡소를 돌아 나온 계곡물이 쏟아져 내려온다. 한 폭의 산수화 같다.
대전사
기암단애 크게 7개의 봉우리로 이루어져 있으며, 응회암체 내에 발달하는 특징적인 절리들과 층준에 따른 침식에 의해 형성되었다.
아들바위
주왕산이라는 이름은 중국의 진나라에서 주왕이 이곳에 피신하여 왔다고 해서 붙은 것으로 산봉우리,
암굴마다 주왕의 전설이 얽혀 있다. 신라 문무왕 때 창건한 고찰 ‘대전사’를 비롯해 주왕의 딸 백련공주의 이름을 딴 백련암, 청학과 백학이 둥지를 틀고 살았다는 학소대, 앞으로 넘어질 듯 솟아오른 급수대, 주왕과 마장군이 격전을 치렀다는 기암, 주왕의 아들과 딸이 달구경을 했다는 망월대, 주왕이 숨어 살다가 죽었다는 주왕굴 등이 꼽힌다. 연꽃 모양의 연화봉과 만화봉, 신선이 놀았다고 하는 신선대와 선녀탕, 폭포 등은 경승지로서의 가치가 충분하다.
주왕암
주왕굴
연화봉, 병풍바위, 급수대
망월대에서 바라본 연화봉과 병풍바위
입석대
입석대 뒤편으로 시루봉이 에워싸고 있다.
주왕산 제1폭포(용추폭포)
주왕산 제3폭포(용연폭포)
급수대와 천둥알 응회암에서 주상절리가 발달하는 현상은 매우 희귀한데, 엄청난 두께로 쌓인 응회암이 용결․냉각되면서 형성된 주상절리에 열변질 광물의 일종인 천둥알이 발달하여 형성되었다고 한다.
급수대는 주방천 계곡의 산책로를 따라 대전사에서 약 3km 지점에 위치하는 응회암질 단애이다. 신라 37대 왕인 선덕왕은 후손이 없어 무열왕의 6대 손인 김주원을 차기 왕으로 추대하였다. 마침 궁에서 멀리 떨어진 곳에 있던 김주원이 궁으로 들어오려던 중 홍수로 인해 알천이 범람하여 건너갈 수가 없게 되자, 이를 하늘의 뜻으로 여긴 대신들이 상대등 김경신을 왕으로 앉혔다. 갈 곳이 없어진 김주원은 왕위를 양보하고 주왕산으로 피신하여 산 위에 대궐을 건립하였는데 이 곳 급수대에서 계곡의 물을 퍼올려 식수로 사용하였다고 하여 급수대라 부르게 되었다는 유래가 전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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