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 우리 강산/강원도

두위봉을 가기 위해 거쳐야하는 자미원역

blue violet 2011. 5. 29. 00:55

험한 산길을 오른 기차가 한 숨 돌리고 가는, 자미원역(2011년 5월 28일)

 

강원도 정선군 남면 문곡3리에 위치한 자미원역, 두위봉을 가기 위해 거쳐야하는 역사다.

영월을 지나면서 기차는 아연 험한 계곡 사이로 파고들며 유유히 흐르는 물길을 만난다. 그 이후 서서히 오르막길을 타, 예미역에서부터 우리나라에서 가장 가파른 산길을 오른다. 산님들을 태운 태백선은 가파른 산길을 올라 숨을 헐떡일 즈음, 바로 수리재 터널이 여닫히고 자미원역을 마주하게 되었다.

자미원역은 1966 .1.19. 보통 역으로 영업개시 했지만, 폐광이 되면서 현재 신호장으로 격하되었다고 한다. 철로 변 곳곳에 여전히 숯검정 빛을 띠고 있어, 한 때 번성했던 탄광지대의 흔적들이 보인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해발 688m 역'이라는 팻말이 세워져 있었다는데, 그 마저도 사라졌고 오늘은 등산객들로 붐비지만 평상시 대합실 풍경은 그저 쇠락해버린, 인적 없는 간이역일 뿐이다. 주변엔 인가도 몇 채 없고, 갑자기 나타난 산님들 소리에 놀란 강아지들만이 연신 짖어댄다. 그리고 한동안 적막감이 감돌다가, 어느 순간 시끄러운 화물열차끼리 교행이 이루어지곤 한다. 산님들이 물밀듯이 나가고 난 역사는 더 큰 적막감이 감돈다.                  

 

       

             

 

 한적한 풍경(태백선 안에서

 

 

 

 

 

 

 

 

 

 

 

 

 

 

 

 

 

 

자미원역  -조정

 

태백선 철도는 우리나라 철도의 티베트선이라 불러도 좋습니다.            

기차가 서지 않는 플랫폼이 오백 년 된 양은 냄비처럼 빛나는

소맷부리를 햇빛에 고스란히 내놓은 길목이 있습니다.

 

좁고 긴 의자는 드문드문 어깨가 벗겨져

빗소리에 쉬 젖거나 

몸 무거운 새를 붙들고 안 놓아 주기도 합니다.

심심한 철로를 혼자 두고 나올 수 없어서 놓친 버스가

가을 쪽으로 흘러가는 뒷모습을 따라

터널 터널 터널 몇 개 여닫고

오늘도 걷는다마는 정처 없는 이 발,

이 길을 밟고 가면

비폭력 무저항으로 하늘을 사열 중인 포탈라궁이 보입니다. 

                

고랭지 배추밭에는 울음 울 자리가 많습니다.

증산역에서 하차하여 자미원역으로 돌아가 버스를 놓쳐야 합니다.

사람이 내어놓은 길에게 절 대신 눈물을 쏟아주고

마른 울음을 소리칠 자리만 많습니다.

               

 

이 시를 읽고, 두위봉이 아니더라도 자미원역에 꼭 가보고 싶었다. 예미역을 지나 드디어 폐허가 되다시피 한 자미원역 승강장에 열차가 섰다. 해발 688m, 마을길을 내려다보면 까마득하고, 그 아래 포장도로가 산 위로 이어지고 있다.      

         

 

 

 

 

 

 

 

 

 

 

 

 

 

 

 

 

 

 

 

 

 

 

 

 

 

 

 

 

 

 

 

 

 

 

 

 

 

 

 

  두위봉 가는 길

 

 

 

이런 만남.

나는 청량리역에서 7시 43분 출발이라, 여섯시 50분쯤 집을 나서서 바로 택시를 탔다. 

택시 기사님이 연세가 지긋한 할아버지셨다.어딜 가느냐고 물으셔서 강원도 정선에 있는 산에 가는 길이라고 했더니, 옛날 생각이 난다고 말씀하셨다. 40여 년 전 청년이던 시절을 회상하시면서, 그 옛날 생각이 나 그 때 이야기보따리를 풀어내셨다 기사님은 그 시절에는 목적지를 정하지 않고 역사에 나와 기차표를 한 장 끊고, 무조건 목적지에 도착하여 올라가는 기차표를 끊어놓고 여기저기 발길 가는 대로 다니다가, 다시 돌아왔던 그 시절 이야기를 추억에 젖어 말씀하셨다. 그리고 그 시절 마음을 터놓고 지내던 여자 친구가 있었는데, 서로 갈 길이 달라 헤어지고 난 후 40여년 만에 우연히 보았다는 말을 하였다. 그런데 할아버지는 그 때 그 여자 친구를 보고 아는 체 하지 못했다고 하셨다. 여자 친구였던 분이 수녀가 되어 있어, 먼발치에서 수녀님을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고 하셨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 때 왜 자신을 알리지 못하였을까?’라는 아쉬움이 남는다는 말씀도 하셨다. 

우리 집에서 청량리역까지 15분 정도 소요되는 짧은 시간에 할아버지의 지나간 추억을 들으며, 나 또한 20대를 떠올려 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