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 우리 강산/경상도

물 위에 떠 있는 섬, 경북 영주 무섬마을

blue violet 2014. 6. 30. 09:42

양반가옥과 초가 등 다양한 형태의 전통가옥이 있는 곳, 무섬마을에 가다. (2014년 6월 28일)

 

경상도를 가로지르는 낙동강 줄기에는 강물이 산에 막혀 물돌이동을 만들어 낸 곳이 여럿 있다. 물 위에 떠 있는 섬이라 하여 무섬마을이라 불리는 경북 영주시 문수면 수도리도 그 가운데 하나이다. 마을 주변을 낙동강의 지류인 내성천과 서천이 휘돌아 흐르는 대표적인 물동이마을이다.  

무섬마을의 역사는 1666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반남 박씨와 이곳에 처음 터를 잡은 후 선성 김씨가 들어와 박씨 문중과 혼인 하면서 오늘날까지 두 집안의 집성촌으로 남아있다. 지금도 40여 가구 전통가옥이 지붕을 맞대고 오순도순 마을을 이루어 살고 있는 무섬마을은 수백 년의 역사와 전통이 오롯이 남아있다.    

 이 무섬마을은 양반가옥과 초가 등 다양한 형태의 가옥들을 이루었는데, 어떤 곳은 사람이 살기도 하고 또 어떤 곳은 전시를  해둔 가옥들이다. 특히 해우당과 만죽재가 알려져 있으며, 김규진 가옥, 김위진 가옥 등 9점이 경상북도 문화재 자료와 민속자료 로 지정되어 있다. 영주 수도리 해우당 고택 (경상북도 민속자료 제92호로 지정) 해우당은 경상북도 민속자료 제92호로 지정되어 있는데, 무섬마을로 들어가는 수도교를 건너자마자 바로 왼편으로 보이는 가옥이다.

해우당은 19세기 말 의금부 도사를 지낸 해우당 김낙풍이 1879년(고종 16)에 세운 ㅁ자 집으로 앞쪽의 대문을 중심으로 큰 사랑과 아래 사랑을 두고, 오른쪽의 큰 사랑은 지반을 높이고 두리기둥에 난간을 돌려 누마루를 꾸몄다. 흥선대원군의 정치적 조언자였던 김낙풍, 그래서 해우당 고택에 있는 현판은 흥선대원군이 써주었다고 한다. 

 

 

  

 


 

 

 

 

 

 

 

 

 

 

 

 

 

 

영주 수도리 만죽재(경상북도 민속자료 제93호로 지정) 

반남 박씨의 입향조인 박수가 1666년(헌종7년)에 지은 집으로, 무섬마을에서 가장 오래된 한옥이다. 만죽재는 무섬마을의  가장 중심부에 위치하고 있다. 반남 박씨의 종가이자 마을에서 가장 오래된 가옥이다. 조선 현종 때 박수가 무섬마을에  입향하면서 지었다고 한다.

 

 

 

영주 수도리 김정규 가옥(문화재자료 제362호. 조선시대)

싸리대를 엮어 담장을 만든 초가로 된 까치구멍집이 김정규씨 가옥, 마당과 앞 뜰 및 집 바깥은 깨끗하게 정돈되어 있다. 1920년대에 건립되었으며, 담장 없이 남서향으로 자리잡고 있다.  뜨락에는 갖가지 꽃들이 꽃망울을 터트리고 있었다.

 

 

 

 

 

 

 

영주 수도리 김규진 가옥(문화재자료 제361호. 조선시대) 

초가로 된 김규진씨 가옥은 안채로 들어가는 문설주에 귀신의 출입을 막는다는 엄나무가 놓여 있다. 초가로 되어있는 까치구멍집이다. 1975년 지붕을 개량하여 시멘트 기와를 얹었기 때문에 까치구멍이 없어졌다고 한다.

 

 

 

영주 수도리 김위진 가옥(문화재자료 제360호. 조선시대) 

수도리 아랫마을의 가장 오른쪽에 서남향으로 자리잡고 있다. 이 마을의 대표적인 ㅁ자형 주택으로, 1800년대  말기에 현 소유자의 조부가 지은 집이다.  

 

 

 

 

 

 

 

 

 

 

 

 

 

 

 

조선 중기. 조선시대 전형적인 양반가를 이룬 무섬마을은 지은 지 100년이 넘는 고택만도 16동이다. 대표적인 고택은 고종 때 병조참판을 지냈던 박재연 고택, 그의 대청마루에는 실학자 박규수의 글씨 ‘오헌(吾軒)’과 그 뜻을 담은 현판기가 붙어 있다.

 

 

 

  

 

 

 

 

 

 

 

무섬마을의 문화재 무섬마을의 전통 기와가옥은 ‘ㅁ’자형으로 경상북도 북부지역의 전형적인 양반집 구조를 띤다. 대문을 들어서면 안마당을 중심으로 안채와 사랑채, 문간채 등이 사방을 둘러싸듯 배치되어 있어 대문 밖에서는 집안의 생활모습이 보이지 않는다.

무섬마을 전통가옥은 사랑채와 안채로 드나드는 문이 따로 있고, 안채를 사랑채보다 높게 지어 햇볕이 잘 들고 통풍이 잘 되게 한 것이 특징인데, 유교적 격식을 엄격하게 거주환경에도 적용한 결과이다. 안채와 달리 사랑채는 밖에서 누구나 쉽게 볼 수 있는 공간이다.

그래서 무섬마을 전통가옥들은 그 집 주인의 신분을 쉽게 구분할 수 있도록 사랑채의 기둥을 차별화하였는데, 같은 양반이라도 벼슬한 사람이 거처하는 집의 사랑채에는 원기둥을, 벼슬을 못한 사람은 각진 기둥을 세웠다. 집주인의 신분에 따라 사랑채 모양을 달리한 무섬마을의 고가(古家)는 대부분 서남향이다. 북동쪽에서 서남쪽으로 흐르는 산맥의 정기를 고스란히 이어받기 위해 가옥을 배치했기 때문이다.

역사가 100년이 넘는 가옥도 16채나 남아있어 조상들의 자취와 숨결을 그대로 느낄 수 있다. 마을 내 고택과 정자들이 옛 모습 그대로 보존돼 고풍스런 옛 향취를 풍겨 여행객들의 마음을 사로잡는다.

 

 

 

 

 

 

 

 

 

 

 

 

 

 

 

 

 

 

 

무섬 자료 전시관

전통한옥 건물로 고즈넉한 분위기를 자아내는 자료 전시관은 무섬마을의 역사와 문화를 한눈에 살펴볼 수 있는 향토전시관이다. 이곳에는 무섬마을 형성의 역사와 배경, 무섬마을 사람들의 생활과 문화, 그리고 마을이 정착할 수 있는 바탕이 되었던 자연환경에 대한 특수성까지 무섬마을의 모든 것을 일목요연하게 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