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문화유산 수원화성에 가다.(2011년 4월 3일)
수원에서 친구들과 점심 약속이 있어, 서울에서 일찍 출발하여 수원화성을 둘러보기로 하였다.
수원화성은 조선왕조 제22대 정조 대왕이, 당쟁에 휘말려 왕좌에 오르지 못하고 뒤주 속에서 생을 마감한 아버지 사도세자의 능침을 양주 배봉산에서 팔달산 아래 지금의 위치로 옮기면서 축성되었다. 1794년 1월에 착공에 들어가 1796년 9월에 완공하였다. 수원화성은 사적 제3호로 지정 관리되고 있으며 소장 문화재로 팔달문(보물 제402호), 화서문(보물 제403호), 장안문, 공심돈 등이 있다. 근래 수류방화정은 보물 제 1709호로, 서북공심돈은 보물 제 1710호로 지정되었다. 또한 수원화성은 1997년 12월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록되었다.
어제 나홀로 북한산 산행을 하고 조금 늦은 시간에 하산하였기에 여느날처럼 출근 시간에 일찍 일어나려니 몸이 조금 무거웠지만, 점심 시간에 약속장소로 가려니 오전 시간이 왠지 아깝다는 생각이 들었다. 수원에 사는 친구가 화서역으로 나와 동행하여, 수원화성 같이 걸으며 말벗이 돼주어 정말 고마웠다.
시간이 넉넉하지 않아 서포루에서 시계방향으로 연무대가 있는 곳까지 수원화성을 반 정도 둘러볼 수 있었다. 수원행성에서는 행사가 진행 중이라, 서남대에서 내려다보니 수많은 관람객들이 일렬로 서서 구경을 하고 있었다. 다음에 벚꽃 필 때 꼭 다시 오고 싶은데, 그땐 모두 둘러볼 수 있도록 시간을 충분히 갖고 와야겠다.
서포루에 들어서자마자 보이는 푯말
서포루(西砲樓) :
포루는 성곽을 돌출시켜 만든 치성 위에 지은 목조 건물로, 초소나 군사대기소 같은 곳이다. 적이 성벽에 접근하는 것을 막기 위해 화포를 쏠 수 있도록 만들었다. 화성의 5개 포루 중 서북각루와 서장대 사이에 위치하고 있다. 화성의 전투 지휘소인 서장대와 근거리에 위치하고 있기에 5개의 포루 중 가장 중무장한 포루이다. 또한 서암문이 적에게 공격받는 것에 대비하여 설치하였다고 한다.
서장대(西將臺) :
장대란 성곽 일대를 한눈에 바라보며 화성에 주둔하였던 군사들을 지휘하던 지휘소로 서장대와 동장대 두 곳이 있다. 서장대는 팔달산의 산마루에 우뚝 서 있다. 서장대 위에 올라가서 굽어보면 팔방으로 모두 통한다. 이 산 둘레 백리 안쪽의 모든 동정은 앉은 자리에서 변화를 다 통제할 수 있다고 한다. 돌을 쌓아서 대(臺)를 만들고 위에 층각을 세웠고, 문지방 위에 친히 정조 임금께서 쓴 큰 글자 화성 장대(華城將臺)로 편액을 붙였다.
서노대(西弩臺) :
노대는 성 가운데서 다연발 활을 쏘기 위하여 높이 지은 것으로서 화성의 노대는 서노대와 동북노대의 2기가 있다. 서노대는 팔달산 정상에 위치하여 사방을 볼 수 있으며 정 팔각형 평면의 기와벽돌로 쌓았다. 서노대는 서장대의 뒤에 있는데, 노대는 위는 좁고 아래는 넓게 만들어져 있다.
수원행성 전경과 수원성 안에 사는 사람들.
서북각루(西北角樓) :
각루는 성곽의 비교적 높은 위치에 세워져 주변을 감시하고 휴식을 취할 수 있으며 비상시 각 방면의 군사 지휘소 역할을 하는 곳이다. 서북각루는 화서문의 남쪽, 산 위의 휘어 굽은 곳에 있다. 위에는 판문을 설치하였고 외면에는 모두 짐승의 얼굴을 그리고 전안을 뚫어 놓았다. 내면에는 태극을 그리고, 한 간은 비워서 층계를 설치하여 북쪽으로 누상에 이어지게 하였다.서북각루는 화성의 네개 각루 중 하나로 숙지산 자락이 마주보이는 자리에서 화서문 일대의 군사를 지휘하기 위해 만들었다. 1층은 온돌을 설치하여 숙직하는 군사가 사용하도록 하였다고 한다.
화서문(華西門) :
화성의 4대문 중 서쪽 대문.화성 서쪽의 남양만, 서해안 방면으로 연결되는 통로로서 원래의 모습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어 보물 403호로 지정되어 있다. 화서문 편액은 초대화성 유수였던 좌의정 채제공이 썼다고 한다.
서북공심돈(西北空心墩) :
공심돈은 비상시에 적의 동향을 살피기 위한 망루와 같은 것으로, 화성에서 처음 만들었다. 서북공심돈, 남공심돈, 동북공심돈 이렇게 세 개를 만들었고, 서북공심돈은 화서문 북치 위에 있다. 벽돌로 삼면을 쌓고 그 가운데를 비워두고, 그 가운데에 널빤지로 누를 만들었다. 위아래에 공안을 많이 뚫어서 바깥을 엿보는데 편리하게 하였다. 불랑기, 백자총을 발사하여도 적으로서는 화살이나 총탄이 어느 곳에서 날아오는지 모르게 되어 있다고 한다. 근래 보물 제 1710호로 지정되었다.
북포루(北鋪樓) :
치(일정한 거리마다 성곽에서 바깥으로 튀어나오도록 만든 시설물)가 성 밖 19척까지 튀어 나와 있는데, 이렇게 성곽을 돌출 시켜 만든 것은 성벽에 다가서는 적을 공격할 수 있게 하기 위해서라고 한다. 3면의 평평한 여장은 누의 바닥과 이어지며, 각각 포를 쏘는 구멍을 내었고 안쪽에 나무 사다리를 설치했다.
북서포루(北西砲樓) :
북서쪽에 위치한 북서포루는 검정 벽돌을 쌓아 치성과 같이 성 밖으로 돌출시키고 내부는 나무판을 이용하여 3층으로 구획하였으며 포혈을 만들어 화포를 감추어 두고 위와 아래에서 한꺼번에 공격할 수 있도록 하였다. 북서포루는 성 밖으로 약 8.8m 돌출되어 있으며 지붕의 형태가 성 안쪽은 맞배지붕형식, 바깥쪽은 우진각 형식으로 된 것이 특징이다. 화서문과 장안문 사이에 위치해 있고, 적이 성벽에 접근하는 것을 막기 위해 화포를 쏠 수 있도록 만들었다.
장안문(長安門) :
화성의 4대문 중 북쪽 대문으로, 화성의 정문이라고 할 수 있다. 장안문 편액은 전 참판 조윤형이 썼다. 장안'이란 말은 수도를 상징하고, 백성들의 안녕을 상징하는 의미이다. 웅장한 위엄을 주는 우진각 지붕으로, 서울의 국보 1호 숭례문보다 큰 문으로 우리나라에서 가장 큰 성문이다.성문의 바깥에는 반원형의 웅성을 쌓았는데, 이것은 항아리를 반으로 쪼갠 것과 같다고 해서 붙인 이름으로 성문을 보호하는 역할을 한다.
홍이포 :
명나라 말부터 청나라 때까지 사용하였던 유럽식 화포로, 포구 쪽에서 화약과 포탄을 장전하여 발사하는 포구장전식 화포다. 사정거리가 700미터에 달하는 위력적인 화기로서 성곽 또는 포루에 배치하거나 성곽 공격용으로 사용하였다.
북동포루(北東砲樓) :
장안문과 화홍문 사이에 위치하고 3층으로 하여 그 가운데를 비운 점이 마치 공심돈의 구조와 비슷하다.
모두 벽돌을 사용하여 만들었고, 화포를 많이 감추어 두어 위아래에서 한꺼번에 쏘게 하였다.
북수문 :
화성의 중간을 남북으로 흐르는 수원천 위에 북수문과 남수문 두개의 수문을 세웠다. 북수문의 편액을 화홍문이라 하였는데, 화(華)자는 화성을 뜻하고 홍(虹)은 무지개를 뜻하는 글자로 장쾌한 물보라가 수문으로 넘쳐나는 모습을 화홍관창이라 하여, 수원 8경의 하나다.
북암문(北暗門) :
암문은 성곽의 깊숙하고 후미진 곳에 적이 알지 못하도록 출입구를 내어 사람이나 가축이 통과하고 군수품을 조달하기 위해 설치된 문으로 화성에는 5개의 암문이 설치되어 있다. 북암문은 방화수류정과 각건대 사이에 위치하고 있다. 화성에서 유일하게 벽돌로 좌우 성벽을 쌓았다. 동북각루의 동쪽 40보 되는 벽돌로 쌓은 성 사이에 있다. 홍예(문의 윗부분을 무지개 모양으로 반쯤 둥글게 만든 문)로 되어 있다. 문 위에는 둥근 여장을 설치했는데 제도는 동암문과 같다. 홍예 사이에는 돌계단을 설치하여 들어가는 곳은 높고 나오는 곳은 낮게 만들었는데, 지세가 그러하기 때문이다.
동북각루(東北角樓) :
화성의 4개 각루 중 하나로, 경관이 가장 아름다운 곳이다. 동북각루는 방화수류정이라고도 불리는데, 이는 꽃을 쫓고 버드나무를 따라가는 아름다운 정자라는 뜻, 용이 사는 연못 위에 있는 동북각루는 뛰어난 건축미와 경관의 아름다움으로 용연, 화홍문과 더불어 화성의 백미라 일컫는다.
광교산의 한 쪽 기슭이 남으로 뻗어내려 선암산이 되었고, 다시 서쪽으로 감돌아 몇 리를 내려가 용두(龍頭)에서 그치고서 북쪽을 향하여 활짝 열렸다.
동북포루
화성의 5개 포루 중 하나인데, 이곳은 지세가 주변보다 높아 동암문과 동장대, 북암문과 방화수류정까지 엄호할 수 있는 루이다. 은거한 선비들이 쓰는 모자인 각건과 모양이 비슷하다 하여 각건대라고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