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 우리 강산/충청도

속리산 법주사

blue violet 2016. 6. 24. 17:04

다섯 친구 모여 행복한 1박 2일 여행(2016년 6월 18일)

 

다섯 친구(미옥, 인숙, 종숙, 한숙, 나)가 뭉쳐 1박 2일 여행을 떠나는 날, 참 오랜만이다. 모처럼 친구들과 함께 속리산 등산을 하게 되어, 엄청 설렌다. 새벽 일찍 속리산을 가기 위해 인숙이만 기흥휴게소에서 픽업하기로 하고, 넷이서 녹번역에서 만났다. 올레내비를 법주사주차장으로 설정을 하고 신나게 출발~~기흥휴게소에서 친구를 만나 간단히 아침 식사하고, 다시 법주사로 출발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내비를 따라가다 보니 상주를 지나쳐 자꾸만 경상북도 지역으로 내려가고 있었다. 알고 보니 보은의 법주사가 아닌 군위군에 있는 아주 작은 절집을 설정해놓고 가게 된 것, 완전 멘붕. 친구들의 위로에 나는 마음을 가라앉히고 다시 보은 속리산으로 출발했다.   

나는 가족들과 함께 30여 년 전, 법주사에 왔던 적이 있다. 강산이 세 번이나 변할 정도로 오랜 시간이 지났는데도, 그 때 말티재를 돌아 법주사에 이르기까지 굽이굽이 올라간 그 아름다운 산길을 잊을 수가 없었다. 30여 년 만에 친구들과 함께 다시 찾은 곳, 말티재를 넘으며 산과 산들이 겹겹이 펼쳐진 아름다운 풍경에 빠져들었다.   우리는 법주사 입구에 다다라 점심을 먹고, 말티재에서 시작되는 ‘꼬부랑길’이 있어 가볍게 트레킹을 하려고 했지만, 처음 조성되는 시점이라 수목이 없고 걷기 좋은 길이 아니었다. 그래서 숙소로 돌아와 윷놀이도 하고 여유 있는 시간을 보냈다. 이렇게 여행 첫날을 보냈다.   

그리고 이튿날 시작된 속리산 완주 산행을 마치고 해질 무렵이 되어 우리는 법주사 일주문을 들어섰다. 천왕문을 거쳐 팔상전에 이르러, 오래된 단청 그대로인 팔상전을 보고 감탄, 또 감탄. 팔상전 왼쪽으로 법주사 금동미륵대불 있고, 팔상전을 지나면 바로 대웅보전이 자리해 있다. 법주사는 속리산 깊은 산골 아주 아늑한 곳에 넉넉하게 자리 잡은 절집이라 참 좋았다. 천천히 법주사를 둘러보며 조용히 기도를 하고, 절을 나섰다.   

우리는 보은읍내로 이동해 고기를 먹고 보은에서 7시 반쯤 서울로 출발하였다. 다행히 저녁에 출발해서인지 서울로 돌아오는 길이 정체되지 않았다. 기흥휴게소에 잠시 쉬어 친구를 내려주고, 우리는 서울로 돌아왔다. 1박 2일 여행을 같이 한 친구들에게 감사하다. 긴 구간 등산을 함께 한 친구들, 특히 내 실수로 인해 장시간 운전을 하게 되어 고생을 한 종숙이 정말 고맙다.

 

 

 

 

 

 

 

 

 

 

 

 

금강문

 

 

 

법주사 석련지(국보 제64호)

법주사 경내에 있는, 돌을 깎아 만든 조그만 연못.

 

 

 

 

 

 

 

 

법주사 천왕문(天王門)

경내로 들어서면 처음 마주치는 전각, 무섭게 생긴 사천왕(四天王)이 악귀를 밟고 있는 모습을 조각해 놓은 건물이다. 절을 호위하고, 부처님의 가르침을 지키는 역할을 하는 존재다. 사천왕은 고대 인도의 토속신앙에서 유래한 존재이지만, 불교에 편입되면서 불법(佛法)을 지키는 수호신으로 자리매김했다.

사천왕상은 통일신라시대부터 조성되기 시작해 고려를 거쳐 조선시대로 이어졌다고 한다. 조선 후기 사천왕상도 임진·병자 양란 이전 것은 장흥 보림사(1515년), 김천 직지사(1596년) 둘 뿐이라고 한다. 임진왜란과 병자호란 이후 갑자기 천왕문의 형태로 스케일이 커지면서 집중적으로 세워졌고, 조선 후기 천왕문만 전국에 17곳이 남아 있다고 한다.

사천왕상은 불교를 탄압한 유교국가 조선에서 위기에 처한 국가를 구해낸 불교를 기억하라는 무언의 상징물이어, 천왕문은 종교건축의 의미를 뛰어 넘어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의 교훈을 잊지 말라는 메시지를 담은 일종의 기념비라고 한다.

 

 

 

팔상전(국보 제55호)

우리나라의 현존하는 유일한 목탑인 팔상전은 사찰 창건 당시에 의신대사가 초창했다고 전해진다. 하지만 정유재란 때 완전히 불타버렸으나 1624년(인조 2년)에 사명대사가 재건한 것으로 전하며, 탑파 관념이 없던 시대의 사상을 잘 반영하는 탑파 건물이다.벽면에 부처의 일생을 8장면으로 구분하여 그린 팔상도(八相圖)가 그려져 있어 팔상전이라 이름 붙였다고 한다. 팔상전의 내부에 불상을 모신 점으로 볼 때, 절 집으로 보는 전각의 형태다. 하지만 탑과 집의 형태가 혼재하는 팔상전의 꼭대기를 보면 탑의 형식을 취하고 있어 목탑으로 부른다. 법주사 팔상전은 지금까지 남아 있는 우리나라의 탑 중에서 가장 높은 건축물이며 하나뿐인 목조탑인만큼 고풍적이다. 

 

 

 

 

법주사 금동미륵대불

 

 

 

 

 

 

 

 

 

 

 

 

 

쌍사자석등(국보 제5호)

신라시대 석등으로, 두 마리 사자가 마주 서서 뒷발로 복련석을 디딤하여 앞발로 양련석을 받들고 있는 모습.

 

 

 

 

 

 

 

 

 

 

 

 

 

 

 

 

 

 

대웅보전(보물 제915호)

553년(신라진흥왕 14년)에 창건되었으며, 1624년(조선인조 2)에 벽암대사가 중건하였다. 법주사 대웅보전에 모셔진 부처님은 실내 안존불로서는 대한민국에서 제일 큰 불상이라고 한다. 대웅보전 법당에는 법신, 불신, 보신의 삼존불을 중앙의 불단에 모셔놓았는데, 법당의 가운데 부처님은 마음을, 왼쪽 부처님은 덕을, 그리고 오른쪽 부처님은 육신을 뜻한다. 이렇듯 부처님은 원래 한 분이지만 우리 중생들이 쉽게 이해하기 위해서 세 몸으로 모셔 놓은 것이라고 한다.

 

 

 

 

 

 

 

 

 

 

 

 

 

 

 

 

 

 

 

 

 

 

 

보물 제 216호, 마애여래의상

추래암 암벽에 조각되어 있는 불상. 둥근 얼굴과 감은 듯이 뜬 눈, 그리고 두툼한 입술, 반듯한 어깨, 유난히 잘록한 허리 등 추상성을 띠고 있는 불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