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 우리 강산/강원도

영월에 간소하게 모신 단종, 장릉에 가다.

blue violet 2013. 9. 5. 23:16

단종의 애환이 서려있는 장릉에 가다. (2013년 8월 30일)

 

우리는 조선 6대 왕인 단종의 슬픈 역사가 서려 있는 사적 196호 장릉으로 향했다. 영월 시내 중심부에 있는 장릉은 단종(재위 1452∼1455)이 잠든 곳이다. 장릉은 지방에 모셔진 유일한 왕릉이며, 다른 능에 비해 그 규모가 아주 간소하다. 또한 낮은 구릉에 모셔진 다른 왕릉에 비해 장릉은 매우 높은 곳에 모셔져 있다.

대부분의 왕릉이 봉문, 정자각, 홍살문이 일직선상에 있지만 단종릉의 봉분은 좌향으로 모셔졌고 정자각은 북쪽을 향하고 있어 능의 옆구리를 향해 절을 할 수 밖에 없다고 한다. 단종은 아버지 문종이 재위 2년 만에 승하하자 12세의 어린 나이로 왕위에 오르게 되지만 3년 만에 숙부인 수양대군에게 왕위를 빼앗기고 청령포에 유배되었다. 그 이후 17세 되던 해에 죽임을 당하여, 동강에 버려졌다고 한다. 

중종 때부터 단종의 제사와 무덤에 대한 의견이 나왔고, 선조 때 상석, 표석 등, 망주석이 세워 졌으며, 숙종 24년(1698)에 복위시켜 장릉이라 하였다. 2009년 6월 30일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 되었고, 매년 4월 말이면 슬픈 사연을 가진 단종을 기리기 위한 단종문화제가 개최되는데 40회 넘게 이어오고 있는 영월의 큰 행사라고 한다. (위치 : 강원도 영월군 영월읍 영흥리 산133-1)

 

 

 

            

관리사, 재실 

   

 

 

 

 

 

 

 

 

 

 

 

 

 

 

홍살문과 엄흥도 정려각                                        

단종이 청령포에 유배되어 17세 되던 해에 죽임을 당하여 동강에 버려졌고, 아무도 시신을 거두는 사람이 없었다고 한다. 이를 안타깝게 여긴 영월 호장 엄흥도가 충절을 지켜, 단종의 시신을 수습하여   영월, 현재의 능이 있는 곳에 암장하였다고 한다. 단종의 시신을 수습한 엄흥도의 충절을 기리기 위해 정려각을 만들었다.                                                                          

 

장판옥
단종묘가 조성된 언덕 아래쪽에는 단종을 위해 순절한 충신을 비롯한 268인의 위패를 모신 장판옥이 있다.  

 

 

 

 

                           단종 비각                                  

 

 

 

 

 

           

 

 

                   정자각. 단종의 묘를 찾아낸 박충원의 행적을 새긴 낙촌비각

 

 

장릉(사적 제196호)

능 주위에 세워진 석물(石物)의 수가 적다. 보통 왕릉 주위로는 다양한 종류의 석물이 두 쌍씩 짝을 이루고 있는데, 장릉에선 봉분 앞 상석과 장명등(長明燈)을 중심으로 망주석(望柱石)과 문인석(文人石) 그리고 석마(石馬)만이 각각 한 쌍씩 자리해 있을 뿐이다. 무인석(武人石)이 보이지 않는 것도 특이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