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여행/캄보디아

작은 킬링필드, 그리고 민손촌

blue violet 2011. 3. 20. 07:14

작은 킬링필드가 있는 곳으로 출발(2009년 3월 3일)

여행 마지막 날 아침, 체크아웃을 하기 때문에 짐을 챙겨 숙소를 나왔다. 우선 작은 킬링필드를 가서 설명을 듣고, 그리고 민속촌으로 이동하여 프놈펜의 미니어처를 둘러볼 수 있었다. 그곳에서 사진도 찍고 여유 있는 시간을 보낸 후, 쇼핑관광을 하기 시작하였다. 우린 모두 쇼핑관광에 흥미가 없었지만, 패키지 여행의 특성상 일정표에 따라 움직이는 것이라 보석매장, 뽕나무에서 자란 상황버섯 판매장과 라텍스 매장을 둘러 본 후 재래시장을 방문하였다. 우리나라 30~40여 년 전의 시골 장터 풍경을 하고 있었다. 그곳을 둘러 본 후 우린 압살라 공연을 보면서 저녁을 먹고, 공항으로 이동하여 밤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여행을 하면서 우리나라에서 태어나 평범하게 살아갈 수 있는 것에 정말 감사하는 마음이 들었다. 무엇보다도 톤레샵호수의 수상가옥촌을 보면서 무척 가슴이 아팠고, 앞으로는 사소한 일에도 감사하며 살아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씨엠립 날씨는 고온다습한 날씨라서, 찌는 듯한 더위에 자칫 힘든 여행이 될 수도 있는데, 우리가 지치지 않게 뜨거운 한낮엔 잠시 휴식을 취하면서 여행을 할 수 있게 일정을 변경해준 가이드님이 고마웠다. 여행 내내 항상 웃는 얼굴로 우리를 배려해주며 안내를 해준 로컬 가이드의 해맑은 표정은 2년이 지난 지금도 잊을 수 없다.

 

                                      

 

 

 

 

 

 

 

 

                                         

 

 

'죽음의 뜰'이란 의미의 킬링 필드는 캄보디아 크메르 정권 때, 크메르군에 의해 수천명이 학살되어 매장된 곳. 1975년 폴포트가 이끈 크메르 루즈 정권이 '농민천국'을 건설한다며 베트남군이 프놈펜을 함락할 때까지 4년간 자국민을 대상으로 대량학살을 자행하였다고 한다. 폴포트는 새로운 '농민천국'을 구현한다며 도시인들을 농촌으로 강제이주 시키고, 화폐와 사유재산, 종교를 폐지했다. 이 과정에서 과거 론놀정권에 협력했다는 이유로 지식인, 정치인, 군인은 물론 부녀자, 어린이까지 무려 전인구의 4분의 1에 해당하는 200여 만 명을 살해하였다고 한다.

크메르 루즈 정권은 1979년 베트남의 지원을 받는 캄보디아 공산동맹군에 의해 전복되었다. 그곳에서 발굴한 유골들을 넣어놓은 위령탑은 캄보디아의 수도 프놈펜이 있지만, 이곳에 와트마이사원을 지으면서 희생자의 유골을 넣어 둔 작은 킬링필드가 있다. 얼마 전 폴란드의 오시비엥칭에 갔을 때, 작은 킬링필드가 떠올랐었는데 지금 캄보디아 사진을 정리하면서, 오시비엥칭의 수많은 유태인과 정치범들의 유골들이 떠오른다.

 

 

 

 

                            작은 킬링필드

 

 

 

 

 

 

 

             와트마이사원

 

 

 

 

 

 

 

                                                       

 

 

 

 

 

 

                          프놈펜 미니어쳐

 

 

 

 

 

 

 

 

 

 

 

 

 

 

 

 

 

 

 

 

 

 

                           로컬 가이드, 이주상 과장님과 함께

 

 

 

 

 

 

 

 

 

 

                        천상의 무희 압살라 공연

 

 

 

 

 

 

 

 

 

 

 

 

 

 

 

크메르 왕족은 무슨 이유로 울창한 숲 지대에 거대한 사원을 짓고 살았을까? 큰 유적을 섬세한 건축기술로 예술로 승화시킨 크메르 왕족은 어찌된 영문인지 앙코르 유적에 대해 기록역사를 만들지 않았을까? 어떤 학자는 앙코르 유적지가 군사적으로 전략적 요충지이자, 끝없이 펼쳐진 비옥한 땅이 왕국의 수도로서 적합하기 때문에 이곳에 수도를 건설했다고 주장한다.

또 다른 학자들은 앙코르 사원군의 지리학적 위치와 사원들의 배치는 고대의 천문학적 이론에 근거하여 세워진 제국이라고 설명한다. 어떤 이유에서 간에 크메르인들의 생활상과 예술적인 가치를 충분히 엿볼 수 있는 훼손 되지 않은 사원은 정말 아름다웠다. 반면 검은 이끼에 덮이고 무성한 덩굴에 휘감긴 훼손이 심한 사원을 보면서, 천년 역사가 사라지는 것 같아 안타까웠다. 

부드러운 사암으로 축성된 앙코르 유적이 세상에 알려지게 된 것은 1861년 프랑스 출신의 박물학자 앙리 무오에 의해서다. 그는 문화 탐사단을 이끌고 황폐한 밀림에서 크메르 왕국이 세운 전설의 도시 앙코르를 발견하게 된 것이다. 그로 인해 불가사의한 건축물이 시공간을 달리하며 신비로운 전설을 가득 품은 채 오늘날까지 전해지고 있다. 앙코르가 발견되었을 때, 사람들은 이 도시가 먼 옛날에 신이 만든 도시라고까지 말했다. 몇 세기의 세월을 다시 보내며 이런 이야기들은 전설이 되었고, 순례자들은 이 신비로운 신의 도시를 향해 순례여행을 시작했다. 그 덕에 우리도 신의 도시인 앙코르 유적지를 방문할 수 있었고, 화려한 역사를 자랑하는 사원을 둘러볼 수 있어 감사할 따름이다.